어젠 본격 밭작물을 경작 하기전
밭불을 놓느라
긴시간 보초를 서고 삭정이를 그러 모으고
밭 양쪽에 위치한 수로가 있는 탓에
식물들이 물기운을 타고 소생하는 봄
유난히 승한 수기에 겨우 손바닥 하나정도를 태우곤
번번히 꺼져 반복적으로 불을 대려 놓고
불의 혀를 관찰하며 하루 종일을 보냈다.
밭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결에 시간이 흘러
주섬 주섬 서둘러 챙기고 귀가 하기 일쑤다.
성격이 제법 꼼꼼한 나로서도
밭을 일년내내 예쁜 모양새로 가꾸고 작업 도구를
한곳에 모아 유지 관리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집과 15km쯤 떨어진 적지 않은 거리도 거리이거니와
농막 또는 눈,비와 해가리개 시설이 전무한 들판에서
농작물 관리를 위해 필요한 소소한 여러 종류의 작업 도구를
적기에 찾아 쓰고 보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처음 아버지 사후 병중에 심어 두고 돌아 가신
김장 채소를 수확할 땐 눈물이 앞을 가려
작업이 여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겨울이 가고 다시 밭을 갈아 엎을 시기
수도 없이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을 농기구 손잡이를
처음 만졌을땐 아버지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져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밭경작을 하자고 마음먹지 않았으면
꿈에도 접하지 못했을 아버지와 농구기가 함께한 긴 시간들의 흔적
결코 만만치 않을 밭 작업을 시작하며
까치가 울고, 멧새가 지저귈 때면 저 새떼들중에
아버지가 홀로 땀흘리며 힘겨운 작업 시간을 보내실 때
아버지와 함께 했던 까치, 맵새도 있지 않을까?
궁금증이 들기도 했었고
새떼들의 지저귐이 정답게 느껴졌다.
어느날인가 유난스레 지저귀며 새떼들이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한바탕 법썩을 떨 때면
어째 올핸 날마다 홀로 밭을 드나들며 살뜰히 가꾸시던
할버지가 도통 안 보인다며 어찌된 일이냐고
떼로 몰려 다니며 성화를 해 대는 것도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올해로 3년째 접어 들었다.
첫해는 막연히 꿈꾸어 왔던 전원 생활을 흙을 만지는
즐거움속에 하루 하루 꿀 같은 시간들을 보냈고
지난해엔 유래 없는 가뭄으로
모종 시기부터 턱턱 숨막히는 여름날에 물을 나르며
작물을 돌보느라 가을이 되기전에 지쳐 나가 떨어져
손을 놓아 버리곤 겨우 김장을 담그고 어영 부영 해가 저물었다.
다시 맞은 봄과 함께 또 다시 밭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쌓여 겨우내 삭아진 삭정이
제멋대로 자리를 잡아 덩치를 키우는 대지의 주인인
한해 살이 자생물의 잔해들을 소각하고
또 다시 그 터에 삽질 하고 호미질을 하며
잠시 멈추었던 간섭을 이어갈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대지의 주인은 누구인가
자연의 생태에 인간의 간섭으로 인한
생산물의 소유권 다툼은 계속 될 것이다.
작은 라이터 한개와 전지 가위, 모종 삽등 소도구들과
불을 다스리기 위한 한통의 물을 준비해
시작된 들불 태우기는 그날 일사량과 바람의 방향등
조건에 따라 만만치 않은 일이다.
들깨, 콩, 옥수수, 땅콩, 고추, 가지, 팥, 녹두, 토마토..을
수확한 뒤 남은 잔해는 밭 여기저기 작은 무리로
겨우내 스러져 작은 돌기형태로 남아 있고
호박덩굴이며 오이 울양대 지주로 사용했던 막대와
노끈등으로 폐허 처럼 남아 있던 것들을 정리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밭으로 유입됐던
플라스틱류들도 수집 정리해 되가져와 폐기 해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한 일이지만
일단 불을 놓기 시작하면 연기를 피하랴 불꽃을 조절하랴
이리뛰고 저리뛰고 해야 하는 작업의 연속이다.
선글라스, 마스크, 장화를 착용하고
오로지 잘 선별한 자연의 잔해만을 소각 하는데도
때론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뜨거운 불의 기운과
소각으로 인해 발생하는 매케하고 독한 연기와
재티를 불을 놓는 지점과 바람의 방향을 살피며
피하는 일도 쉽지 않다.
태울 것들을 나르기 위해 손에 그러쥔 풀매기용 호미는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사이 어디다 놓았는지
보물찾기가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오늘도 예외없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그러다 이젠 아예 호미를 찾을 수 없다.
할수 없이 장갑 낀 손으로 태워 없앨수록 정리가 되기겠에
땅 위에 부지런히 손을 놀릴 수 밖에..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것 같은 작업은 계속 이어진다.
거추장스럽더라도 작업도구용 벨트를 장만 하던지 뭔 방법을 찾아야겠다.
이럴때 아버지의 쇠갈퀴가 있으면 딱인데 싶어
찾아보니 다행히 함지속에 쇠붙이 부분이 들어 있어
생각보다 잘 보존이 되어 있다.
얼마나 고맙고 반갑던지..
제법 손잡이가 길고 덩치가 큰 삽, 쇠갈퀴등은 보관하기가 쉽지 않다.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기도 쉽지 않고
온가족이 생활하는 아파트에 들여 놓는것도
들판의 잡균들과 미세한 생물들의 혼입 여부도 걱정스럽다
쇠갈퀴를 찾아든 기분은 일단 천군 만마를 얻은 장수의 기분이랄까?
처음 쉬갈퀴와 쇠스랑의 손잡이를 잡았던 그날
손잡이는 아버지의 손때로 매끈하고 반질반질 기운 마저 있었다.
아버지를 뒤이어 밭을 경작하고자 처음 마음 먹었을땐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밭을 일구마 생각하고 처음 밭에 들어 서서
구체적으로 땅을 돌아 보았을땐 기대반 두려움 반이었다.
아버지의 삽자루, 쇠스랑, 호미..
아버지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든 손잡이를 보고
생전의 아버지를 대하는 듯한 숙연함과
아버지의 거룩했던 손길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딱 3년뒤
이제 그 매끈하던 외양은 자취가 없고
쇠붙이들은 녹이 슬었다.
찾아든 쇠갈퀴로 많은 수고를 덜어 작업 시간이 단축 되었다.
이제 막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는 머위 밭터에
겨우내 모아 두었던 원두 찌꺼기와 퇴비를 묻어 주고
전지 가위를 들고 나무에 가지 치기도 했다.
돌아가시기전 그해에 심으셨다는
밭가의 대추 나무와 보리수 나무
위암 4기말 투병중이시던 아버지
농사에는 도통 관심 조차 없는
5남매의 자녀를 두신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시며
두 그루의 나무를 심으셨을까?를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한켠으론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버지의 대추나무와 보리수 나무, 그리고 이전부터 있던
둥그렇게 자리잡은 찔레나무 한그루와 인동,
새의 선물로 움터 자리 잡은 뽕나무와 머루
심은 이 없이 소리 소문 없이 밭가에 들어 와 절로 크고 있는
복숭아나무, 감나무, 구기자나무
내가 묘목을 옮겨 심은 블루베리, 무화가 나무로
점차 수종이 늘어 났다.
사과나무, 포도나무 한그루쯤 더 심으면
이젠 과수원 부럽지 않게 과일을 따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아버지의 유품인 농기구를
잘 관리해 수명을 유지시켜야겠다.
그동안 심고 싶은대로 이것저것
떠오르는 대로 욕심껏 작물을 심고 가꾸었는데
작물의 종류가 30여 가지가 넘으니 관리가 손이 많이 갔다.
올핸 욕심부리지 말고 토란 돼지감자에게 터를 더 내 주고
관절 상하지 않게 설렁설렁 드나들며
대에충 ~~ 농사를 지어 볼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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