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단짠단짠 ㆍ ㆍ나를 위한 위로의 시간

부엌놀이 2019. 7. 19. 22:23

 

 

 

남편이 퇴직을 앞두고 집에서 긴 휴가 기간을

보내기 시작한지 딱 한달

점심 식사로 아들은 닭 볶음탕과 밥을 먹었다

우리 내외는 밥이 적음으로 갈아 논 콩국물에 소면을

삶아 먹었다

식전 남편에게 무엇을 먹겠느냐 물으니

밥을 먹어야겠단다

평소 같으면 두말할 필요 없이 콩국수를 선택 했을텐데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퇴직 기념으로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과 남편이 좋아히던

프라쟈 호텔 중식당 도원에서 중국 음식을

대접 받기로 했단다

그러니 점심엔 밥을 먹는게 나을것 같아 밥을 먹으려

했단다

그말을 듣고 당신 나한테 정말 잘해야 돼

안 그러면 벌 받아

생각치도 않도 말이 툭 튀어 나왔다

 

나의 직장 생활은 여자치곤 짧지 않은 13년반

길다면 긴 시간이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이 튀어 나왔을까

남편의 정년 퇴직은 사람들이 축하하며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들이 많기도 한데

육아 문제로 직장 생활을 긴 고심 끝에 접어야 했던

나는 너무도 쓸쓸하고 아픈 기억이 있다

짧지 않은 근무였지만 큰아들 애가 어미와 떨어져

보모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우유 먹기를 거부하고 잔병치레가 6개월 가까이 지속돼

열이 나는 아이를 안고 앉아 밤을 새우다

출근을 해야 하는 일이 길게는 1주일이 되는 일이

번번히 있었다

더 이상 아이를 그대로 두고 볼수 없다

경제 상황 보다 더 중대한 가족 안전의 문제다

남편과 시부모는 아이의 건강 상태는 뒷전이고

그저 직장생활을 계속할 것을 원했다

남편이나 시대 누구도 함께 방도를 찾아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조력자가 내겐 아무도 없었다

하여 뭐고 따질 게제 없이 6개월 홀로 고민 끝에

사표를 내기로 결론을 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병치레 끊임 없고 설사 해대고

우윳병을 거부하는 아이는 몇일 반짝 하다

열이 오르면 힘 없이 늘어져 있는 아이의 양육 문제

때문에 숙고 끝에 내린 결정 이었건만

나에게 위로의 말은 커녕

맘대로 직장을 그만 둔 나와는 살수가 없으니

이혼을 하길 원한다며 사직을 알린 당일

남편이 내민 것은 누런 서류 봉투였다

 

시어머니가 집안 경제 사정은 생각도 없이

제 멋대로 회사를 그만 두고 사표를 쓴 며느리를

용납을 할수가 없다며 이혼을 하라는 훈수에

변호사 사무실에 들려 이혼 서류를 준비해 왔단다

자신은 이미 맘의 정리가 다 됐으니 이혼 서류에

내 도장만 찍으면 된단다

 

기가 찬다

물론 서류는 열어 보지도 않았다

경제적 부를 원하고 돈이 그렇게 필요 하다면

나는 내 아이 양육을 선택 했으니 어머니나 남편에게

직접 돈을 더 버시라 했다

난 더 이상 내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고

단 하루라도 아이를 온전히 내 손으로 건강하게

돌보고 먹이며 키우고 싶다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이는 시가의 장손이므로

이혼을 하더라도

나에게 앙육권을 줄 수가 없다는 기가 막힌 대답이

돌아 왔다

아이는 시댁에 데려가 어머니가 키울 것이고

결혼시 주택 자금으로 남편측에서 내 논 돈은

딱 450만원 이었다

그것도 직장 신협에서 대출해 온 돈으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결혼 전 모아 두었던 돈과 둘이 번돈을 합해

원금 상환 하고 아이도 태어난 2년 뒤엔,

1800만원 짜리 다가구 주택 2층 13평으로 이사했다

남편은 그 전세금도 자신의 명의로 작성된 계약이므로

나에겐 법적 권리가 없으니

너는 아이고 부동산 임차권에 대한 권리가 없단다

 

그간 시모한테 아침이면 신문이나 우유 배달하듯

약 봉투와 아픈 아이를 보모에게 안기고

병원에서 일 하댜보면 소아과 와래 환아의 울음 소리가

떼어 놓고 온 아들의 울음소리 마냥 근무시간 내내

내 아이이 울음 소리가 되어 들렸다

낯을 가리기 시작하며 시작된 매일 반복 되는

짧은 이별과 만남의 시간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와

나도 고통스럽고 아이는 내내 잔병 치레와 우윳병 거부로

늘어야 할 체중은 변함 없다

늘기는 커녕 줄었다 회복 했다 하는아이를 더 이상

떼 놓고 출근할수 없다고 했다

정히 내가 직장 생활을 계속하길 원한다면 어머니가

애를 돌보아 주시길 바란다 수차 얘길해도

쓰다 달다 한마디도 답을 들은 바가 없었다

 

결혼을 앞두고 시댁에선 남편을 통해

한달 생활비로 매달 20만원의 돈을 생활비를

내 놓아야 한단 얘길 듣고

그동안 남편을 통해 매달 돈을 보내 드렸다

그것도 내손으로 드리면 받는 사람 민망할까봐

 

어머니는 왜 남들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 좋은 직장을

그만한 일로 그만두려느냐

그만두면 얼마 못가 후회를 할것이 뻔다며

손자의 양육보다 오로지 돈벌이를 끝없이 종용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제사 장손 타령을 하며 내가 지키고자 하는

아이를 시모가 데려다 키워야 한단다

약 28년전 시어미라는 사람과 남편에게 당했던

참 어이 없고 기가 막혔던 지난 시간들의 기억이다

 

남편은 오후에 직장 동료들과의 저녁 식사 약속으로

출타를 했고 나는 나대로 문화센터 수업을 받고

은행ㆍ 마을 금고에 들려 이사후 주소 이전등 절차를

마치고 몇가지 장을 보고 귀가한 시간은 5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귀가 후 다른 때와 다르게 피로를 느껴 비몽사몽

졸다 깨다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학원 수강을 마치고 돌아 온 작은 아들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Tv를 보며 앉았는데

달달한 것이 먹고 싶다

달달한거 뭐 있지 ? 웨하스 외엔 집엔 없다

요럴때를 위해 달달한 간식꺼리도 구비 해야는구나 싶다

잠시 뒤 짭짤한 안주와 한 모금의 맥주를 마시고 싶은 충동

다행 맥주는 있다 냉장고 속 시원한 500cc들이

양이 좀 많기는 한데 절제도 정도껏해야지~

웨하스 몇쪽ㆍ 멸치 볶음ㆍ 캔 맥주ㆍ치즈를 먹고 나니

어느 정도 해소는 된다

그야말로 단짠 단짠 요래서 단짠 단짠 하는가 싶다

결혼 후 펼쳐진 잔혹사는 보통 소설 쓰면 세권이라지만

거기에 두어권 더 보태 나는 5권은 족히 될 듯하다

내 인생을 한 없이 끌어 내려 송두리째 쳐박아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태연하게 여유롭고 선택적 생활을 하는

남편을 보면 때때로 부아가 치밀고 화를 참기 힘들다

남편을 이런 말도 안 되는 나에 대한 결혼 잔혹사에

대해 한번도 사과 하거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말도 안되는 억지스런 겷혼 생활의 불공정함은

어찌 이 사건 뿐이겠는가?

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럽던 기억은

절대로 절대로 내 죽는 날까지 지워 낼수 없을것 같다

 

지난해 남편은

82년생 김지영이란 제목의 책을 주문해 읽고

내게도 읽기 권했다

지금 아주 이슈가 되고 있는 신간이라며~

 

남편을 만나 지내 온 나의 결혼 후 여성으로의

삶은 책의 내용의 몇 갑절의 고통과 희생을

요구 받던 그야말로 구렁텅이였다

 

지금 핸드폰으로 그날의 기억을 떠 올리며 인자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히고 분노가 치밀어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