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이와 고추는 날 기다려 줬다

부엌놀이 2019. 7. 1. 02:22

 

 

남편의 퇴직 기념 가족 동반 유럽 여행을 다녀 왔다

한동안은 밭에 가기 어려울테니 출발 전일 짬을 내

언니네 가게도 들르고 밭에 잠깐 다녀 왔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간 두차례 비 뿌려

오이가 몇개 달렸다

몇그루 안심은 고추 나무의 고추도 몇개 따고

모종 살 때 피망은 안 샀는데

고추 모종이랑 혼선이 됐는지 피망 달린 고추 나무에서

피망도 한개 따 왔다

 

급하게 얻어 두었던 꽃차용 메리 골드 몇그루 심고

옥수수 모종 솎아 옮겨 심고 ㆍ 열매 채소 나무 곁순

자르고 여행시 필요한 장보기 하고 돌아 왔다

담날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야

수확한 오이 ㆍ 고추 차에 그대로 두고 챙기지 못해

지하 주차장에 방치 된것을 알게 됐다

8일 뒤에나 귀가를 할텐데 썪어 문드러져 차를 더럽히면

어쩌나 ? 주인이 잘 돌보지도 않는 새에도 묵묵히

꽃 피우고 열매 달고 키워 낸 작물들에게 미안해

어쩌나?

여행길 내내 마음이 쓰였다

 

동유럽 호텔 조식 ㆍ 현지 가정식에는 오이가 어찌 그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지 오이를 볼때마다 마음 편치않았다

 

귀가 길 남편에게 먼저 차 키를 챙겨 주차장에 다녀 오라

부탁을 하고 어찌 됐을까 궁금해 했는데

오이는 조금 누릇해지고ㆍ 고추는 조금 쪼그라진 채

잘 버티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반가웠다

얼른 오이를 반으로 갈라 먹어보니

동유럽 식탁에서 먹었던 오이보다 더 싱싱하고

아삭거린다

견뎌줘서 고맙고 기다려 줘서 고마웠다

그동안 6년차 농부로 오이와 고추 많이도 따 먹었지만

오이와 고추에게 이렇게고마워 보긴 또 처음이다 ㆍ ㆍ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