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방

시래기 밥

부엌놀이 2020. 12. 3. 16:52


아주 오래전 이모네 집에 가면
수돗가가 있는 너른 마당 투명 플라스틱 지붕 아래
전기선으로 만든 빨랫줄에 수 없이 걸린 옷걸마다
가득 무청이 가지런히 쭉쭉 내리 뻗은채 널려
있었다
김장철 무를 쓰고 남은 시래기를 말리던 정경이다
그땐 내가 시래기 맛을 제대로 못 느낄때라
그저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더불어 먹는 묵은
나물밥과 먹는 나물 쯤으로만 생각했다

무슨 시래기를 이렇게나 많이 말리느냐 여쭈니
치아가 안 좋으신 외할머니가 1년 내내 드실 몫을
말려 건사해다 드린다고 얘길 하셨었다
뭔 시래기를 할머니 혼자서 저렇게나 많이 드시나
그땐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멸치와 된장을 넣고 1년 내내 지져 드신다던
할머니가 조금은 안됐다는 생각도 들기도했다
우리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외할머니가
더 맛있는 걸 드실수 있으실텐데
앞 세워 보낸 자식들이 한둘이 아니고 많으니
우리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도 맘대로 못 잡숫고
사시는것 같아 불쌍한 생각마저 들었었다
자식 여럿을 앞세워 보내신 할머니는 웬만히
아픈 것은 아프단 소리도 없이 사신다고
이모는 말해 주셨다
그 이후로 주렁주렁 걸린 시래기를 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 시래기 나도 50이 넘어 가며 맛을 제대로
알게됐다
남들은 생각지도 않고 버리는 알타리 무청 까지
말려 두고 요모조모 잘 활용했다
시래기는 어떤 효능이 있나 검색해 보니
골다공증 변비 개선등 중년의 여성에게 좋은 성분
들이 아주 많은 식재료라기에 더 잘 챙겨 먹게됐다
생선 조림. 닭 볶음탕을 다 건져 먹은 뒤
부드럽게 손질된 시래기를 넣고 다시 푹 끓이고
돼지 등뼈 감자탕을 할때도 듬뿍 넣고
멸치를 한줌 넣고 된장 양념을 해 먹기도 한다

나의 일터에선 별미 밥으로 시래기 밥도 한다
시래기 밥을 참 맛나게도 만들어 상품을 만든다
경력이 아주 많으신 분께 팁을 얻어 내가 하던
방법에 그 팁을 더해 시래기 밥을 만들어 먹었다
그 보다는 조금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기존의 방법 보다 더 맛있는 시래기 밥을 먹을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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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시래기 40g.
(쌀 2인분. 잡곡 1인분. 불린 율무)

잘 불려 삶은 시래기를 앙금 흙을 잘 씻어내
송송 썰어 참(들)기름을 넉넉히 넣고 무친다
(평소의 밥보다 시래기 수분을 생각해 물을 덜
잡는게 시래기 밥의 관건이란다)
밥솥에 쌀과 함께 안쳐 밥을 짓는다

된장. 으깬 두부. 파. 마늘. 기름. 꽈리고추를 잘게
썰어 넣고 끓인 양념장에
비벼 먹으면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맛도 좋은
시래기 비빔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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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불린 율무도 넉넉히 넣은 시래기 잡곡 밥은
정말 중년 여성들에게 좋은 밥인것 같다

아마도 우리 외할머니도 시래기를 정말
좋아 하셨던것 같다
이젠 조금은 덜 미안하고 마음에 위안이 된다
정말 나의 외할머니는 할머니의 굳은 믿음처럼
국민 학교 5학년때 사고를 당한 막내 이모.
할머니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첫째 삼촌. 셋째 삼촌
외할아버지와 우리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 가신뒤 얼마 안돼 돌아 가신 둘째 외삼촌 까지
천국에서 정말 만나셨을까? 궁금해진다

요즘 한창 잘나가는 트롯 가수 임영웅을 보면
자상하고 깔끔한 젊은날의 삼촌을 보는듯하다
어릴적 삼촌이 오시면 올망졸망한 조카 5명이 함께 쓰는 책상 서랍들을 뒤집어 엎어 가며 소재해 주셨다관리 방법을 알려 주시던 잘생겼던 우리 삼촌을
닮은 것 같아 둘째 삼촌 생각이 난다

아니다 우리 삼촌이 조금 더 덕스럽고
더 잘 생기시고 음성도 참 멋있었던 분이다
삼촌이 우리들을 야단을 치시거나 혼 내신 기억은
없는데 방학때 외갓댁을 가도 짬짬이
우리 형제들에게 차근 차근 생활 태도나.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 차근 차근 알려주셨었다
우리 집 안방에 옆으로 길게 걸린
말하자면 길다란 거울 처럼 생긴 사진까꾸(?)에
한자리 차지한 둘째 외삼촌의 사진 보곤
우린 호랭이 삼춘 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젊잖은 자켓 안에 기하학적인 연속된 문양의
니트를 입고 찍은 삼촌의 모습~
용구 삼춘.울 엄마. 외할머니 . 할아버지...큰삼춘
모두 모두 보고 싶은 오늘이다

시래기 밥 레시피 포스팅을 하다
외갓댁 식구들에 대한 추억이 줄줄이 소환돼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짠한 기억들...